안녕하세요,
재작년 여름에 졸업한 사람입니다.
스랖 오랜만에 들어왔는데 레이아웃이 많이 바뀌었네요.
정신없이 일하다가 최근에야 삶을 좀 돌아보고 있습니다.
이 시국에 이게 무슨 철없는 제목인가 싶으시겠지만, 학교 다닐 때만 해도 전 제가 졸업하고 취직할 거라 생각 못했습니다.
예전에 쓴 글들을 봤는데, 취준할 때 쓴 본삭금 글들 사이에 이런 글들도 있네요.
돌이켜보면 저는 스스로를 참 많이 괴롭혔습니다.
사회에서는 못 만날 멋지고 천재적인 친구들과 학교를 함께 다녔음에 감사하면 그만인 걸, 나의 부족함만 탓하며 스스로를 더 힘들게 만들었습니다.
저학년 때부터 그런 마음을 쌓아두다가 곪고 곪던 게 터져 병이 났던 것 같습니다.
마지막 학기부터 상담과 약물 치료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학교가 너무 싫어서 도망치듯이 졸업했습니다.
공백기가 있는 게 불리하다는 걸 알면서도 학교를 빨리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취직 못해서 어느 날 자살하더라도, 그 전에 부모님 학사모는 씌워드려야겠단 마음이었습니다.
과거의 저는 그랬었는데,
지난 1년 간 저는 정말 정신없이 잘 지냈습니다.
멋지고 능력 있는 동문 분들 사이서 잘 풀린 편은 아니겠지만,
저를 좋게 평가해주신 분들의 눈에 들어 번듯한 곳에 취직했고
(아직까진) 적성에 맞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정신과를 다니고 있고 이따금씩 감정 기복을 겪지만,
퇴사할거란 허언을 입에 달고 사는 흔한 사회인이 되었지만,
이제 학부 때 친구들을 자주 못 만나서 혼자됨을 실감하는 외로운 졸업생이 되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재정적으로 독립해서 사람 구실 하고,
워커홀릭이지만 그만큼 배려심도 깊으신 사수를 만나
막내 노릇 하고 가끔 귀여움도 받고 (저희 엄마 연배이십니다)
미래에 대해 건설적으로 고민하고, 힘든 사이사이 행복한 일상을 맞이할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사람 많은 곳을 못 갔었는데 최근에는 좋아하는 가수의 콘서트도 무사히 다녀왔습니다.
돌이켜보면 사실 학교 다니는 동안 불행하지만도 않았습니다.
전공이 안 맞았지만, 전공보다 더 좋아하는 복수전공을 만나 학구열을 되찾았습니다.
좋은 책을 많이 읽었고, 평생 계속하고 싶은 취미도 학교 다니면서 접하게 되었습니다.
소중한 인연들을 정말 많이 만났고, 지금도 연락하는 친구들을 사귀었습니다.
어쩌다보니 주전공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어서, 학부 때 공부 더 열심히 할걸 싶습니다.
고학년이 될 즈음 아팠었다 보니 진로 설계나 네트워킹을 제대로 못한 것도 많이 아쉽습니다.
자격지심 갖지 않고 대학 생활 좀 더 알차게 보낼 걸, 하는 후회는 늘 남겠지만.. 누구나 마음 한 켠에 각자의 미련을 담고 있으리라 생각하고 잊어버리려고 합니다.
예전 글에 따뜻한 댓글 남겨주신 분들, 아마 기억 못하시겠지만 저는 덕분에 잘 지내고 있습니다. :)
요즘 학교 다니는 친구들은 에타를 많이 쓸텐데..
재학생 친구들뿐만 아니라 같은 처지의 또래들,
그리고 더 큰 삶의 풍파를 맞고 계실 선배님들께서도
힘든 시간 중에 행복과 평화를 얻으시길 하는 마음에 글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주말 잘 보내세요.
감사합니다.
작성자: 익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