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을 이성과 의지로 바꿀 수 없다
사람은 다양한 욕구를 가지고 있다. 당장에 먹고 살기 힘들 때에는 배불리 먹는 것이 큰 욕망이다. 살다보면 외로움과 존재의 허전함을 강하게 느끼고 누군가가 나를 좋아해주고 인정해주기를 바란다. 혈기가 왕성할 때에는 성욕을 강하게 느끼기도 한다. 누군가가 나를 부당하게 비난하거나 공격을 했을 때에는 복수를 하고 싶은 욕망도 생긴다.
종교인이나 고상한 사람들은 먹는 것은 수준 낮은 욕구이니 참아야하고 명예도 허무한 것이라과 한다. 성욕을 죄악시해서 금욕하라고 하거나 부부 간 이외의 성관계는 죄라고 하기도 한다. 원수를 내몸같이 사랑하고 자비를 베풀라고도 한다. 이런 것을 보며 일반인들은 이런 말을 하는 이들을 우러러보며 존경하고 자신같은 범인들은 차마 이르지 못하는 경지라고 여기며 포기하고 이런 감정들에 휩쓸려 산다.
하지만 사람의 욕구들은 진화적으로 보았을 때 모두 생존을 하고 자손을 남기기 위해 필요한 욕구들이다. 먹어야 생존하고 생식을 해야 자손을 남긴다. 누군가가 나를 좋아해주고 인정을 해줘야 같은 편이 생겨 안전해지고 또 자신의 세력을 확장할 수 있다. 그리고 억울한 일을 당하고도 반격하지 못하여 약자로 보이면 누구나 우습게 보고 괴롭힌다. 노예같은 삶을 살거나 희생당할 수 밖에 없다. 복수심도 정당한 감정이다.
이런 감정들은 생존을 위한 본능으로 dna에 박혀있는 것이기 때문에 아무리 성경과 불경을 읽고 훌륭한 목사와 스님의 이야기를 들어도 없어지지 않는다. 조금 차분해질 뿐이다. 종교를 믿는 사람들도 억울한 일을 당한 후 분노하며 복수심에 불타는 것을 많이 보았다. 아무리 이성과 의지로써 바꾸려고 해도 바꿀 수가 없다. 잠시 참더라도 계기가 생기면 다시 뇌리에 떠오르고 그 감정에 휩싸인다.
문제는 사람들이 특정한 순간에 그 감정에 너무 몰입하여 장기적으로 큰 시야에서 봤을 때 자신의 인생에 불리한 선택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폭식을 하면 건강을 잃고 사랑과 인정을 받기 위해 노력하다 이용만 당할 수도 있다. 성욕을 무리하게 발산하면 정상적인 가정을 유지하기 힘들다. 복수는 순간의 감정에 과하기 마련이며 그럴 경우 다시 상대와 더 큰 갈등으로 상호파멸에 이르게 된다.
이성과 의지가 할 수 있는 일은 장기적 시각에서 자신의 감정을 일시적으로 절제하고 좀 세련된 방법으로 해결하는 것이다. 요즘 다이어트를 하면서 소식을 할 때 욕구가 너무 쌓이는 것을 풀기 위해 일주일에 하루는 맘껏 먹는 날을 둔다. 먹는것은 수준 낮은 욕구라 자주 먹으면 질린다. 다만 다른 욕구를 충족하지 못했을 때 먹는 욕구로 해소하는경우가 있는데 이럴 경우 절제하기 어렵다.
너무 주변 사람들의 사랑과 인정을 얻기 위해 매몰되어 이를 구걸하다가는 오히려 사랑과 명예를 잃을 수 있으므로 혼자 있는 연습, 소신을 지키는 연습을 해야한다. 그래야 더 많은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고 신뢰하게 된다.
복수를 하더라도 자신의 이미지와 미래까지 버려가며 막무가내로 하기 보다는 냉정한 상태에서 힘과 실력을 키워 상대가 나를 무시하지 못하게 한 후 정당한 절차를 거쳐 상대에게 복수하는 것이 좋다. 따끔하게 이야기하고 사과를 받을 수도 있고, 국가기관의 힘을 빌려 처벌받게하고 보상을 받을 수도 있다. 그래야 내 마음이 차분해지고 상대도 나에게 앙심을 품고 다시 공격하지 못한다.
이성과 의지로 감정을 바꿀 수는 없다. 그러나 좀 더 넓은 시야에서 장기적으로 자신의 가능한 많은 욕구를 동시에 충족시키기 위해 미래를 보고 계획을 짜고 절제를 하며 노력하게 할 수는 있다. 흄이 말한 것처럼 이성은 감정의 봉사자다. 그러나 이성과 의지를 잘 사용하는 것은 자신의 감정적 행복을 위해 아주 중요하다.
<이 글은 스누라이프의 좋은 글을 소개하는 "이맛스 프로젝트"의 첫번째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