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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내 안의 부정을 다스리는 법

생각은 습관이고, 나쁜 습관은 버리고 좋은 습관은 들이면 된다.

가장 어려웠던 것은 이 부분이었다. 겸손으로서의 표현이 아니라 그냥 내 자신을 툭 까놓고 내려놓는 것.

다만 내가 지혜가 모자랐을 뿐임을 인정하고 앞으로 나아가면 된다.

모든 사람들이 감정적으로 완벽하게 스스로를 컨트롤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남들보다 특히 우울하거나 감정이 주체가 안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은 사실이고 이런 부류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더 애정과 결혼을 갈구하는 것 같다. 하지만 길게 보면 우울증과 외로움을 덜어내고 정신적으로 성숙하기 이전에 결혼하는 것은 상대방과 미래의 아이들에게 엄청난 상처를 안기는 것이라고 하고 싶다.
내가 바로 그런 부모 밑에서 자랐는데, 그분들의 이야기는 직장 선택 및 결혼과 출산을 비롯해 모든 것들이 자신의 선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주변의 기대와 환경으로 결국 본인들이 불행해졌다는 것이 결론이었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자식들에게 털어놓았다.
이런 ‘때문에’ 병 환자들은 모든 불행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는다. 불우한 환경에서 태어나서, 폭력적이고 강압적인 부모님 밑에 자라서, 친구를 잘못 만나서, 공부를 못해서, 좋은 직장에 못 가서, 돈을 충분히 못 벌어서, 원하는 짝을 못 만나서, 남들 가는 시집장가 아직 못가서, 자식이 힘들게 해서, 몸이 약해서 등등 지금 어떤 문제가 해결 안되서 힘들다고 하지만 그 문제가 해결되면 또 다른 문제를 들고와서 평생 마음의 짐에서 못 벗어난다. 본인만 못 벗어나면 괜찮지, 배우자와 자녀를 비롯한 주변인들은 무슨 날벼락인가.
아쉽게도 이 중 부모는 선택할 수 없었을지도 모르지만 (하지만 불교에서는 내가 부모를 골라서 왔다고 한다) 내 마음가짐에는 다양한 선택지가 있었을 것이다. 현실에서도 내가 바꿀 수 있는 기회도 있었을 것이고. 지금의 나를 만든 것은 켜켜이 쌓여진 선택의 결과들일 뿐이니, 만약 상황이 맘에 들지 않는다면 처절하게 바꿔야할 것은 내 자신밖에 없다. 외적인 문제라면 지금이라도 최선을 다하면 된다. 멋진 몸매가 가지고 싶으면 운동을 하고 현재 직장이 마음에 안 들면 더 업글해서 이직을 하거나 다른 자격증을 준비해도 되고 말이다. 그런데 아무리 바깥을 바꿔도 여전히 불행하다면 그건 내면의 답을 찾으라는 소리다.
불교에서는 가장 지독한 것 중의 하나가 업이라고 한다. 업은 나쁜 것도 아니고 좋은 것도 아니고 습관이다. 그런데 이 것을 바꾸기가 세상에서 제일 어렵다고 한다. 생각도 가장 강한 습관 중의 하나라서 애초에 부정적인 생각을 하거나 우울한 생각을 하는 사람은 계속 그 방향만 생각할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생각의 고리를 끊는 것이다.
나는 명상을 배웠는데 사용했던 방법은 이렇다. 내 안의 우울과 외로움이 올라올 때마다 혹은 부정적인 생각이 떠오르거나 ‘때문에’가 발병하면 그 즉시 내가 제정신이 아님을 인정해버린다. 그리고 내 안의 부정에게 이렇게 얘기하였다. 아무리 백번을 찾아와도 나는 너랑 놀아주지 않을 거고 휩쓸리지 않을 거야. 그런 식으로 나와 그 감정을 분리시키고 (혹은 무시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운동을 하면 근육이 키워지듯 내 안의 긍정도 키워진다. 화도 비슷하게 다스렸다. 예전엔 화가 나면 그 감정이 이틀을 갔다면 이제는 화를내면 5분도 못 간다. 그리고 잘못한 것은 재빨리 사과한다.
가장 어려웠던 것은 이 부분이었다. 겸손으로서의 표현이 아니라 그냥 내 자신을 툭 까놓고 내려놓는 것. 그 순간의 나는 정말 미친놈으로 인정해버리는 것. 화 우울 괴로움 부정이든 뭐든 그건 내가 내 속으로 만든 감정이지 아무도 강요하지 않은 거라는 거다. 외부환경과 남탓은 정말 단 1그램도 넣지 않는 것. 다만 내가 지혜가 모자랐을 뿐임을 인정하고 앞으로 나아가면 된다. 자책할 필요도 없고 후회할 필요도 없이 담담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은 습관이고, 나쁜 습관은 버리고 좋은 습관은 들이면 된다. 혹시 마음이 괴로운 사람이 이걸 보고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면 좋겠다 싶어서 써보았다.
작성자: 익명
이 글은 스누라이프의 좋은 글을 소개하는 "이맛스 시리즈"의 네 번째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