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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너무 미래에 대해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저는 그냥 평범하게 학교졸업하고, 직장생활도 하고 지금은 나와서 작은 사업하면서 결혼한 공대 졸업생입니다. 30대 초반에 큰 사고를 당한 적이 있는데, 그 일로 2년간 엄청난 경험을 했습니다. 지옥이라면 지옥이고 지나온 지금으로서는 한편으로 고마운 일이기도 합니다. 제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대소변도 가리지 못해 부모님 도움을 받아야 했으며, 그 와중에 자존감은 바닥을 치고 삶에 대한 의욕은 꺾여버렸습니다.
전신마비 환자는 아니었지만 회복이 완전히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었고, 재활을 하는데 상당히 오랜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리고 정상생활을 하는데는 크게 제약은 없으나 앞으로도 완벽하게 몸이 잘 움직이지는 않을 것이고 사소한 불편함들은 따라올 것입니다.
이 사고로 저라는 사람이 다른 사람으로 바뀌었다기보다는 그 동안은 알지 못했던 세계를 경험하고 나니 다른 관점에서 삶을 바라볼 수도 있게 된 것 같습니다. 다행히 저는 지금도 앉아서 이렇게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지만 대학병원, 중환자실을 겪어보면 정말 숨쉬는게 얼마나 축복인가 싶고, 그 와중에 내 두 발로 걷고 누구 도움받지 않고 화장실가고 약을 삼키고 한다는게 금전적으로보면 엄청난 가치를 지불해야 가능한 일들일 수 있습니다.
근래 삶의 형태도 다양해지고 먹고사는게 힘들어지다보니 다들 미혼,비혼 이야기도 많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요새 결혼을 안하시는 분들이나, 인생이 공허하다는 것에 대한 글이 종종 올라오는 것을 봅니다. 기혼이든 비혼이든 여기서 막연하게 글을 쓰며 상상하는 50대, 60대는 오지 않을 확률이 큽니다. 결혼을 안하면 자녀가 없으니 요양병원에서 너무 외로울 것이다라던지 자녀가 있으면 본인과의 관계가 어떨 것이다라고 상상하는 것들이요.
남자라면 다들 군대 경험이 있으실 겁니다. 군대가기 몇달 전부터 얼마나 온갖 상상이 본인을 괴롭히고 X같을까 두려움이 컸습니까. 하지만 정작 대부분의 동문분들은 별 탈없이 그냥 그 당시는 하루하루 잘 버티다가 제대하고 지금은 수년, 혹은 수십년이 지난 분도 계실수도 있겠네요. 꼭 남자가 아니더라도 대학교를 졸업하고 회사에 취직할 때만해도 본인이 할 수 있는 온갖 정보망과 인터넷 서치능력을 동원해 앞으로 본인이 겪게될 삶을 상상해보곤 하지만, 지나고보면 다들 아실 겁니다. 그닥 도움되거나 쓸모있는 일이 아니었다는걸.
객관적인 정보로 어떤 선택을 하는데 도움이 되는 정보라면 모를까, 대부분 우리 머릿속을 차지하게 되는건 전체로 보았을 때는 아주 지엽적이고 사소한 것들인데, 점점 생각은 많아져서 스트레스만 커지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저도 회사에 입사하기 전에 그 단체로 장기자랑을 한다던지 회식자리에서 건배사를 한다던지, 아저씨들과 술자리에 어울리면서 늦게까지 집에 못간다던지 이런 부분에 대해 너무 걱정을 한 나머지 입사하기도 전부터 의욕이 꺾이는걸 수도 없이 경험했습니다. 실제로 몇몇 회사는 입사포기를 하기도 했고요.
사실 지나고보면 좋았던 시간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내 삶의 방향을 바꾸어야 할정도로 치명적이고 힘든 시간도 아니었습니다. 그냥 '나 때는 그랬지~'라고 넘길 수 있는 추억이었죠.
제가 다치고 나서 아이러니하게도 문득 '참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쓸데없는 걱정없이 바로 헤쳐나가기만 하면 되는 상태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만약에 기한을 두고 너는 몇월 몇일부터 불구로 살아야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면 인생이 어떻게 됐을까요?
병원에 입원한 이후에는 앞으로 수년, 수십년 뒤 내 삶이 어떻게 될까 걱정을 할 틈이 없었습니다. 하루하루가 사소한일부터 큰 일까지 정신없이 흘러왔거든요. 물론 가끔은 현타도 오고, 걱정도 되는 날들이 많지만 이제는 이런 생각의 나래를 펼치는게 실리적으로 전혀 맞지도 않는 정보이거니와 제 인생에 전혀 도움이 되질 않는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어느 순간 현실로 돌아오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다 똑똑하신 분들이고, 그만큼 생각이 많고 최고의 선택을 해야 한다는 부담이나 강박도 조금씩은 가지고 계실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인생은 절대 예측할 수가 없습니다. 다들 건강하시겠지만 하루아침에 장애를 얻게 될 수도 있고, 전혀 과거에 내가 생각지도 못했던 곳에서 일을 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막연히 어떤 삶의 형태가 나중에는 어떨 것이다라고 상상하는 것은 틀릴 확률이 매우 큽니다. 스마트폰이 제가 대학교 입학했을 때만 해도 없었는데 지금은 이불속에 누워서 환전을 하고 저렴한 비용으로 전세계 상품선물거래도 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가족의 형태도 많이 바뀌어서 이제 한 세대도 지나지 않았는데 저희집도 제사를 더 이상 지내지 않고 친척들을 보는 일도 거의 없어졌습니다. 1인가구는 많이 늘어났고요.
여기 계신 분들이 나이가 들 때쯤이면 무려 30~40년 후입니다. 당장 몇 년, 아니 다음 주 내 신상도 어찌될지 예측하기 힘든 세상인데 '내가 이렇게 살면 앞으로 그렇게 되겠지..'라며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물론 이러한 말도 하루하루가 힘들거나 망나니 같이 사는 사람들에게 해서는 소용도 없는 이야기일 수 있지만, 여기는 최소한 본인 몸 건사정도는 하시는 분들일테니 쓸데없는 걱정이나 예측을 하며 아까운 지금을 낭비하실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설사 여러분들이 걱정하는 그런 상황이 닥친다고 한들, 머릿속으로 상상하는 것과 그것을 겪고 헤쳐나가는 것은 전혀 다른 일입니다. 대부분은 그냥 잘 받아들이고 잘 살아갑니다. 혼자 머릿속으로 상상하거나 옆을 보면서 '나도 비참해지겠다'라고 생각하실 필요 없습니다. 정작 당사자는 별 생각없이 살아갈 것이거든요.
미래가 장밋빛이라는 것은 아니지만,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인생에서 일단 주어진 하루와 상황을 충분히 즐기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인 것 같아 글 써봅니다.
감사합니다.
작성자: 익명
이 글은 스누라이프의 좋은 글을 소개하는 "이맛스 시리즈"의 세번째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