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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 성인 ADHD 확진 후기 및 정보

특히 ADHD는 일반인도 겪을 수 있는 증상이 많아서 더욱 전문가의 판단이 필요합니다.
스스로에게 문제가 있다고 느낄 정도로 힘든 분들은 한 번만 용기내어 진료를 받아보시길 바랄게요.
저도 이제서야 제 자신을 원망하고 자책하지 않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미루는 습관으로 고생하시는 분들께" (https://www.snulife.com/board/gongsage/view/?id=1976793) 라는 글을 쓰고, 예약했던 병원에 다녀왔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저는 현재 성인 ADHD 확진을 받아 약을 복용중이고, 이전보다 증상이 확연히 개선되어 만족하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더 알게 된 것들도 있고, 주의해야 할 점들도 있어 공유해보려 합니다. 다만 저도 어디까지나 한 명의 환자일 뿐 의사가 아니므로 이를 감안하고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 질환 개요
성인 ADHD의 유병률은 약 4%이나, 실제로 진단 및 치료를 받는 비율은 더 낮음.
주요 증상은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충동성이지만, 성인의 경우 과잉행동 증상 없이 주의력 결핍만 남는 경우가 많음.
원인은 유전으로 인한 뇌의 문제로, 신경전달물질의 불균형(도파민 부족)으로 인해 발생.
약물 치료가 많은 경우에 가장 효과적이고, 필요시 행동 치료도 고려함.
더 자세한 내용은 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 홈페이지를 참고. (http://www.adhd.or.kr/)
2. 정확한 진단의 중요성
이전 글에서 많은 분들이 걱정하셨듯이, 전문의 진단 없이 스스로 확신하는 것은 피해야 합니다. 위의 링크된 홈페이지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확진까지 필요한 과정이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습니다. 특히 ADHD는 일반인도 겪을 수 있는 증상이 많아서 더욱 전문가의 판단이 필요합니다.
또 다른 이유는 성인 ADHD의 10명 중 8명은 한 가지 이상의 공존질환(ex. 기분장애, 불안장애)을 동반한다는 점입니다. 이 때문에 다른 질환에 가려져 제대로 진단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따라서 제대로 검사를 받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저의 경우 풀 배터리 테스트(종합심리검사)와 CAT 검사까지 진행한 후에 여타 동반질환이 없는 성인 ADHD로 진단 받았습니다.
특히 고지능 ADHD의 경우 지능으로 인해 문제점들이 가려지는 케이스가 많아 더 진단하기 어렵다고 합니다. 동문분들도 해당되는 경우가 있을것으로 생각됩니다.
3. 증상
증상은 개인마다 편차가 있고, 동반질환의 유무와 종류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니 참고만 하시는게 좋습니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많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호소하는 증상들도 분명 존재한다고 느꼈고, 이에 얼마나 해당되는지에 따라 간접적으로 본인의 상태를 짐작할 수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 경우는 과잉행동/충동성에 관련된 증상은 거의 없고 주의력 결핍만 문제가 있는 케이스였습니다. 구체적으로는
강제성이 없거나 흥미가 생기지 않으면 해야 할 일을 절대 시작하지 않음. 아무리 노력해도 도저히 고칠 수가 없어 자괴감이 들 정도. (ex. 인생의 모든 시험을 벼락치기로 일관)
흥미가 생겨 꽂힌 일에 대해서는 시간 가는줄 모르고 몰입. (과집중)
지루한 일이라고 느낀 순간 집중력이 급격히 떨어져 수시로 멍을 때림. (저집중)
수시로 딴 생각에 정신이 팔려 하나의 일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함 . (ex. 공부를 하다가도 정신을 차려보면 항상 딴짓중)
잠을 자려고 누워도 온갖 생각들이 머릿속을 떠돌며 지칠 때까지 도저히 생각이 멈추질 않음.
하루종일 머릿속에서 노래 하나가 반복재생 되며 맴돌음.
이러한 증상이 생기는 가장 큰 이유는 도파민이 부족하여, 무슨 일을 해도 흥미와 의욕을 느끼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도파민이 많이 나오는 즐거운 일에는 지나치게 빠지고, 그렇지 못한 일들은 극도로 하기 싫은 상태라고 이해하면 쉬울 것 같습니다. 때문에 ADHD는 게임 중독, 알코올 중독, 자위 중독 등 중독성 질환들의 고위험군이기도 합니다.
4. 개인적인 팁
일반인이 우울증 환자의 마음을 제대로 이해하고 공감할 수 없는것 처럼, ADHD로 인한 본인의 어려움은 주변에 얘기해봤자 원하는 대답을 듣기 어렵습니다. 고심 끝에 털어놓아도 대부분 “엥? 원래 다 그런거 아니야?” 정도의 반응만 돌아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비슷한 증상을 겪고 있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가 저에게는 많은 참고와 위안이 되었습니다. 구글에 검색되는 수많은 후기, 에이앱이나 ADHD 갤러리 같은 커뮤니티 등을 통해 저와 같은 사람이 많다는걸, 그리고 그게 병이었다는걸 알게 되었습니다. 당연히 다들 그런줄로만 알고 살아왔던 것들이나, 성격적 특성이라고 생각했던 부분들이 ADHD의 특징이었던 경우가 많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본인의 노력으로 증상을 개선할 수 있는 경우에는 ADHD가 아닐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자책하고 노력해도 변하지 않는 스스로의 모습에, 수없이 실망하다 끝내 자신에게 질려버리는게 이 병의 가장 힘든 점이니까요.
5. 약효 체감
여태까지 스스로가 힘겹게 살아왔다는걸 깨닫게 되었습니다. 해야 할 일을 시작하는게 그렇게까지 어려운게 아니라는걸 처음 알게 되었고, 평생을 이렇게 살아왔다는 것이 한편으로는 허탈하기도 합니다. 지금이라도 알게 되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고, 괴로웠던 점들을 고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한 마음입니다.
가장 체감되는 효과는 딴짓을 하고 싶은 충동이 훨씬 줄어드는 점입니다. 저는 여지껏 평생을 수시로 올라오는 강력한 딴짓 충동에 시달렸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정말 독한 마음으로 억누르고 할 일을 시작해도, 이내 다음 충동을 이기지 못하고 딴짓을 하기 일쑤였던 것이고요.
약을 먹기 전에는 '열심히 하고 싶은데도 도저히 자기 통제가 힘들어서 괴로운 상태'라면, 약을 먹으면 '열심히 하고 싶으면 할 수는 있도록 최소한의 여건이 마련되는 상태' 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요란하고 어지럽던 머릿속이 고요해지고, 충동에 대한 통제권이 생기는 느낌입니다.
그 외에도 떠오르는 잡생각으로 인해 딴길로 새는 현상도 줄어들고, 하루종일 머릿속에서 재생되던 노래 소리가 사라지는 등 많은 증상들이 개선되는 것을 느꼈습니다.
개인에 따라 맞는 약의 종류, 용량, 효과 및 부작용이 전부 다르기 때문에 의사 선생님과 상의 후 천천히 맞춰나가게 됩니다. 약은 메틸페니데이트(콘서타, 메디키넷)와 아토목세틴(스트라테라) 계열이 가장 일반적으로 처방됩니다.
6. 부작용 및 주의사항
가장 일반적인 부작용은 두근거림, 식욕 감소, 불면증입니다. 경우에 따라 심하게 나타나기도 해서 주의 깊게 관찰해야 하는 대표적인 부작용입니다. 이외에도 사람마다 다양해서 불안감, 두통, 입마름 등의 증상으로 인해 약물 치료에 어려움을 겪기도 합니다.
오해하면 안 되는 점은, 약은 본인의 타고난 능력을 다 발휘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 뿐이지 그 이상의 효과는 없다는 것입니다. 주의력에 결함이 있던 상태에서 일반인 수준으로 올라오는 정도가 정확한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약을 먹는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동안 쌓아온 다양한 습관들은 여전히 남아있고, 그것들이 하루 아침에 없어지진 않습니다. 이런 문제가 심할 경우에는 행동치료와 병행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합니다.
스스로에게 문제가 있다고 느낄 정도로 힘든 분들은 한 번만 용기내어 진료를 받아보시길 바랄게요. 저도 이제서야 제 자신을 원망하고 자책하지 않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작성자: 익명
이 글은 스누라이프의 좋은 글을 소개하는 "이맛스 시리즈"의 여덟 번째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