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스누라이프 인생글이 뭔지 묻는 포스팅이 올라왔었음. 나도 내 인생을 바꾼 스누라이프 글을 공유하고 싶음.
2007년에 군에서 제대하고 진로에 대해 고민이 많았음. 동기들 선후배들 많이 하고 있는 고시를 본격적으로 해보려고 학원도 등록해둔 상태였음. 그러면서도 여러가지 책을 읽으면서 생각이 많았음. 앞으로 세상은 어떻게 변해갈까. 그 속에서 내가 가장 잘할 수 있고 즐길 수 있는 의미있는 일은 무엇일까.
별 생각없이 스누라이프에서 본 게시글이 하나 있는데, 제목이 "고시 공부 되도록 하지 마라"라는 글이었음. 경제학부 91학번이신 이원희 선배님 (그 당시 국무조정실-심사평가1 심의관실 사무관)이 어딘가에 쓴 글이었는데, 누가 스누라이프에 공유했던 것임. 출처도 모르겠고, 지금은 구글에서도 검색되지 않음. 나는 그걸 인쇄해서 자취방에 붙여놓았었고, 지금은 그 글의 스캔본만 남아 있어서 그 글이 어떻게 끝맺었는지도 모름.
"자신만의 상대적 우위를 키워 나가십시오. 자신이 내세울만한 것들을 스스로 만들어 가십시오. (중략) 저는 지금 근무하는 분야의 특성상 각 분야 최고라고 하는 전문가들과 일을 할 때가 많습니다만, 일을 하면서 느낀 것은 우리나라에는 진정한 전문가(maven)가 별로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 때 이 말이 뭔가 내 마음을 강하게 울렸음. 그 날로 고시학원을 그만두고 도서관에서 책을 읽으며 여러 가지 분야들을 진지하게 파보기 시작했음. 그 뒤로 많은 일이 있었지만, 나는 그 글의 조언에 따라 내 분야의 "진정한 전문가"가 되는 방향으로 노력해왔고 15년이 지난 지금은 미국에서 교수하면서 잘 지내고 있음.
세상의 모든 것에는 signal과 noise가 있고 스랖도 마찬가지임. 내가 40대를 바라보면서도 스누라이프에 종종 들어오는 이유는, 정말 가끔 만나는 진주같은 동문들의 글이 너무 소중하기 때문임. 군대에서 제대하고 고민많던 복학생이 만난 스누라이프 글은 인생의 항로를 틀어버릴 만큼 강력했음. 일면식도 없는 이원희 선배님께 15년이 지난 지금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고, 후배님들과도 공유하고 싶어서 글을 올림.
고시 공부 되도록 하지마라
이 원희(경제학부91)
국무조정실-심사평가1심의관실 사무관
제목에 맞는말을 하기 위해 무슨 말을 먼저 꺼내야 될지 모르겠군요. 아직 인생을 30년 정도밖에 살지 않은 인생 초보자가 후배들에게 할 수 있는 말이라는 게 짧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란 걸 그저 먼저 길 떠난 나그네가 뒤따라오는 동료들에게 던지는 애정어린 충고 정도로 받아들이면 그보다 더 좋을 것이 없겠습니다.
제 글은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쓰겠습니다. 먼저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들을 두 가지로 나누어서 얘기하고 나머지 부분은 저희학부 교수님들에게 드리고 싶은 말로 글을 맺겠습니다.
우선 후배님들 중에서 고시 든 유학준비든 취직 준비든, 아직 어느 것을 해야 할지 모르는 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하겠습니다. 각설하고 잘라서 얘기하면 고시 공부는 가급적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사법고시든 행정고시든 고시 공부로 대학과 인생의 승부를 걸려고 하지 마십시오. 이유를 말씀드리면, 첫째, 지금 세상은 고시라는 국가 고시 체제가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체제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고시 공부에 발을 디디는 순간 급변하는 세상과 최소한 2년간 떨어져 있게 되고 그만큼 경쟁력에서 떨어질 것입니다. 유명 law firm인 K 회사의 경우 recruit 조건은 변호사 자격증이 아니라 특정분야에 대한 특화된 지식과 경력이라는 사실을 상기하십시오. 둘째, 고시 합격 후에는 열악한 근무환경을 강요받게 될 것입니다. 낮은 보수와 긴 근로 시간에 대해 사명감 하냐만으로 버텨야 하고 시대착오적인 정부 내의 비효율과 맞서야 합니다. 자신 있으신 분만 시작하십시오.
대신 자신만의 상대적 우위를 키워 나가십시오. 자신이 내세울 만한 것들을 스스로 만들어 가십시오. 예컨대 경제학적 바탕위에서 재무 회계 부분에 스스로 전문가라고 자부할 수 있을 때까지 공부한다든가, 국제금융과 파생금융상품 이론에 정통하다는 말을 들을 때까지 공부하십시오. 저는 지금 근무하는 분야의 특성상 각 분야 최고라고 하는 전문가들과 일을 할 때가 많습니다만, 일을 하면서 느낀 것은 우리 나라에는 진정한 전문가(maven)가 별로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공부만 하라는 얘기는 절대로 아닙니다. 사실 학점이 4.3에 근접한 사람은 칭찬보다는 반성해야 할 사람입니다. 미국의 top MBA는 학점보다는 다양한 경험과 창조적인 능동성에 더 높은 점수를 준다고 하더군요.
다음으로 사법 고시든 행정 고시든 고시 공부를 하고 계시는 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하겠습니다. 앞서 말한 것과 모순되는 것처럼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고시 공부를 하기로 하셨으면 합격을 목표로 기한을 정하십시오. 기한 내에 합격하지 못할 경우에는 과감하게 포기하십시오. 특히 행정고시는 제 경험과 행정부에 들어와서 알게 된 지식에 따라 판단할 경우 공부기간과 점수가 비례하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그리고 고시 공부를 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관심이 있고 특화해야 할 부분에 집중하십시오.(예컨대 회계와 상법은 경제활동을 이해하는데 참으로 유용한 tool입니다) 이와 같은 전략은 고시 합격에도 도움을 줄뿐만 아니라 고시 합격 후에도 많은 도움을 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평생공무원을 목표로 삼기보다는 정부에서 근무하는 것을 하나의 소중한 경험으로 삼기 위해 공부한다고 생각하십시오, 자신의 career가 공무원에서 완성되었다고 생각하지 마시고 공무원이라는 것은 관리해야 할 하나의 경력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마지막으로 저희학부 교수님들께 드리고 싶은 말씀입니다. 며칠 전 기술과 진화라는 세미나에 참석했다가 경제학부에 다니는 한 친구로 부터 이런 얘기를 들었습니다. 대부분의 경제학부 학생들이 사법고시를 준비한다고 하더군요. 저는 이 말에 새상 놀랍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고 답답한 마음을 누를 길이 없었습니다. 경제학부 학생들이 사법 고시 해서 안되는 법은 없지만, 경제학부가 더 이상 학생들에게 vision을 주지 못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후배들이 어디로 가야 할 지 모르고 우와좌왕 하고 있다면 그들이 사법고시를 선택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지금이야말로 교수님들이 나서서 다양한 인생경험을 소개하고 현실이 어떻다는 것을 설명하고 더 많은 정보를 제공하는 데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학생들과 더 많은 대화를 나누고 그 (여기서 잘림. 혹시 나머지 부분을 보존하고 있는 분이 있다면 공유부탁드림.)
작성자: 익명